
< 저자 : 켈리 최 >
현재 유럽 11개국 1200개 매장, 연매출 5400억 원이라는 고속 성장을 이룬 글로벌 기업 켈리 델리의 창업자이자 회장. 첫 사업의 실패로 10억 원의 빚더미에 앉아 후배와 만난 자리에서 커피값을 고민했을 만큼 힘겨운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무일푼으로 인생 2막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2년간 할 수 있는 모든 준비와 공부는 다 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사업 공부에 매진하여 세운 회사, 켈리 델리는 매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한 혁신 시스템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바닥까지 가 봐야 보이는 것
친했던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던 그날,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로 가는 발걸음의 내 마음은 무거웠다. 사업의 실패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당시에는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단 한순간도 숨 쉬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반면 점심시간을 넘긴 파리는 평화로웠다.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 자체로 고문이었다. 게다가 실패한 사업가, 바닥을 친 사람일수록 마지막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게 마련이다. 그것마저 없어지면 존재 이유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잘 나가던 시절 나는 후배들을 만나면 그게 몇 명이더라도 밥이든 차든 술이든 무조건 내가 샀다. 그러나 이제 그럴 수가 없었다. 커피값이 어지간한 한 끼 식사비 못지않은 한국과 달리 파리에는 커피 한 잔 값이 생수보다 싼 곳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차비도 아까워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카페로 장소를 잡았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에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변해버린 내 모습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자기 이야기만 했고, 후배의 이야기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사실 내 정신은 온통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 커피값은 누가 내는 거지?' 고작 커피값 때문에 후배를 제대로 축하해주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더없이 비참하게 다가왔다. 결국 후배가 계산을 했다. 카페에서 나올 때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상태에 이르렀고 그때부터 그저 걷고 또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센강 앞에 멈춰진 발걸음, 유유히 흐르는 센강을 바라보며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2년간 스스로 물어야 했지만 애써 외면해왔던 질문을 드디어 던졌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삶을 구제하겠다는 오만함, 회사와 전혀 맞지 않는 비전문가들을 데리고도 충분히 잘 끌어갈 수 있다는 자만심, 인사의 중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미숙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충분히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앞에서도 융통성 없는 태도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 나에게 손실을 안겨주었다. 또한 내가 사장으로서 명령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권위의식이 문제라고 했다. 사장은 자신이 보는 대로 믿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특히 겉으로 드러난 직원들의 말과 행동만으로 판단을 내려서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말이나 표정은 얼마든지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꼭 돈만 보고 움직이는 존재는 아니며 사람마다 중시하는 요소가 다르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직원들과의 마찰이 있긴 했어도 몇 년간 사업은 무리 없이 성장하다 보니 회사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거나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뉴스나 신문 혹은 주변의 사업가 입에서 경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경기가 좋을 때는 다 좋다. 하지만 경기란 항상 좋은 게 아니다. 사장은 개인의 시간은 자산과도 같다. 그 시간에 책도 읽고 공부도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보이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가 보인다. 그래야 비로소 그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우리 회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향성을 잡을 수 있다.
눈과 발로 했던 사업공부
걷다가 지치면 쉬어가며 숨도 고르고, 급할 때는 전력 질주를 하기도 해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넘어진다. 그럴 때는 툭툭 털고 일어서면 된다. 예전에는 이 간단한 이치를 머리로만 알았던 것 같다. 일단 일어서기만 하면 삶은 다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경제적 기준에서라면 직장 생활이 더 안정적일 수 있으나 행복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왕이면 내가 주도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래야 일을 하면서도 행복할 거라 믿었고 그리고 그건 직장인보다는 사업가가 되어야 가능했으며 사업의 쓴맛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나서도 다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성공하든 실패 하든 내 사업이어야 더 신나게, 더 열심히,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 가지 사업 선정 기준을 잡았다. 첫째는 경기를 타지 않을 것 둘째는 돈이 많이 들지 않을 것 셋째는 내가 잘하고 좋아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미쳐서 할 수 있는 일일 것. 명확한 기준에 따라 사업을 선택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흔들림이 사라진다. 내가 아닌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사업을 선택한 사람들은 돈이 더 될 것 같거나 더 좋아 보이는 사업을 발견하면 쉽게 흔들린다. 오랫동안 철저히 준비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나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게 너무 싫었다. 경기가 휘청거릴 때마다 위기를 겪거나 사업을 접어야 한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경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길 원하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분야, 경기가 안 좋아진다고 해서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을 분야를 찾아야 한다. 경기를 가장 적게 타는 사업,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도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 사업은 대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식욕을 충족시키는 요식업도 경기의 영향을 덜 받는 편이었다. 경기의 영향을 덜 받고(요식업) 그중 내가 강점을 가질 수 있으면서 이미 성공한 사업의 사례를 종합해보니 김밥이나 삼각김밥, 초밥 등의 메뉴가 가장 적합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례 조사를 계속하던 중 미국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해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 김밥과 초밥을 납품해 연매출 수천억 원을 올린 김승호 회장의 [김밥 파는 CEO]를 읽게 되었다. '이거다!'란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나는 '마트 내에서 쇼 비즈니스와 접목한 초밥 도시락 사업'으로 길을 정하고 다시 사업 공부를 시작했다. 창업 전에 얼마나 철저히 준비하였는가는 후에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다. 준비는 철저히 하되, 그 시작은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한다면 더더욱 미뤄서는 안 된다. 매일매일 조금씩 관심 분야에 대해서 알아보고 조사하고 공부하며 자신의 꿈에 다가가면 된다.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라,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 만약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성공한 것이다"
- 알베르트 슈파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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